논문을 읽다보면... 논문이 아니라 에세이를 읽고 있는 것 같다. 어째서인지 내가 읽는 논문들은 20페이지가 넘는 것도 허다하고 표나 수식, 그림이라고는 너댓개 정도 밖에 없으니 당연한 것 같지만, 신기한 것은 같은 영어인데 특허에 관련된 논문은 이제 큰 스트레스 없이 읽게 된 반면, 새로 시작한 의료 서비스 관련 논문들은 아는 단어도 사전을 찾아가며 읽음에도 불구, 도데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 사수의 지론은 '여러번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인데, 신기하게도 들어맞는 것 같다. 하나의 논문을 한 번 읽을 때 하루종일이 걸리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두 번째 읽을 때 반나절이 걸리고 목적과 결론이 보이며, 세 번째 읽을 때 이제 무슨 방법론을 사용했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왜 같은 목적의 논문임에도 저자들 간의 서론과 문헌 연구의 구성이 상이한지, 저자가 어느 부분에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기 위해 화려한 인용구로 장식을 해 놓았는지를 알려면 정말 적어도 백 번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게으름을 부리는 와중에도 내가 한번 눈으로 훑고 지나간 논문들이 이백여편 가까이 쌓였다. 그러나 그 중에서 내가 또 읽고 읽어야 하는 것은 넉넉잡아 사십여편. 마치 과거를 보던 시대에 선비들이 책을 읽고 또 읽고 하던것과 같은 그런 공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보도 듣도 못했던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보려 애쓰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남의 생각을 캐다보면 어느 새,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게 되기도 한다. 떨쳐내고 싶은 악몽이 자신이기도 하고 평생 스스로를 미워하겠다고 마음먹어봤지만, 결국 나는 나와 함께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조금씩 거울 속 내 모습을 볼 용기가 생겼다.
최근 다시, 느슨해지는 정신상태와 나태함이 나의 삶에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면서 내 삶에 존재할 수 있는 무서운 장면들과 대사들이 아침 저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나를 침몰시키는 것은 나의 외부에서 침범해 들어오는 요인들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솟아나는 게으름과 나태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인류를 구하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매일 여행다지니 못해도 괜찮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든 당장 내가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comments
comments rss (+댓글 쓰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