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지나간다.
젊고 고운 비구니 스님과 한 이야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눈발 속 예쁘게 매달린 곶감의 빛깔만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차분하고 예쁜 방 안에서 따끈한 보이차를 마시고 채 마르지 않은 반건시를 씹었다. 벽에 붙여진 일정표의 '새벽 3시 기상'이 눈에 들어오고 또 다른 삶의 이야기에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나는 또, 한없이 산만했다.
우박에 눈비를 맞고 가뭄에 메말랐던 낙엽이 촉촉하게 젖어간다.

너는 무슨 병이 있어 여길 왔니. 축령산 편백나무 숲은 병을 치유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눈보라를 뚫고 숲을 가로지는 것은 마치, 병이 주는 아픔과 고통을 숲이 내뿜는 것 같았다. 숲을 걸어나와, 산을 벗어나니 따스한 햇살이 내리쬔다.

늘 그렇듯, 고통의 고개를 넘을 때 내 등을 밀어 주는 이를 가질 수 있으나 결국 마지막 고개는 스스로 넘어야 하는 법이다. 따스한 햇살 속에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잠과 싸우며 운전대를 붙들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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